마블을 통해 본 조직문화의 오해와 진실

조직문화, 누구나 할 수 있는 업무?

조직문화 업무. “누구나 손댈 수 있지만, 제대로 하기에는 어려운 업무” 라고도 불린다. 때문에 조직에 따라 이 업무는 청바지 입는 날이 되기도 하고, 회의를 기계적으로 줄이는 작업이 되기도 하며, 사장님과의 한 끼 식사가 되기도 하고, 가치체계(MVC)를 내재화하는 작업이 되기도 한다. 

한 조직의 문화 업무를 맡고 있는 조직문화 담당자로서, 우리는 어떻게 이 업무에 대해 이해하고 접근해야 할까?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를 가이드삼아, 조직문화에 대한 오해와 진실들에 대해 다뤄보고자 한다.

“하루 종일도 할 수 있어(I can do this all day)”

HR, 인사담당자, 조직문화, 채용, 리크루터, 인사, 채용 담당자, HR커리어
<캡틴아메리카: 시빌 워> 中

“하루 종일도 할 수 있어(I can do this all day)"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를 좋아하는 팬들이라면 익숙할, 캡틴 아메리카를 대표하는 대사다. 그의 등장인 <퍼스트 어벤져>(2011)부터, 은퇴작인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까지 MCU 전반을 거쳐 등장하는 이 대사는, 포기를 모르는 스티브 로저스의 끈기, 자신이 옳다고 믿는 정의와 선(善)을 향한 꺾이지 않는 신념과 의지를 상징한다. 성조기 모양을 본뜬 슈트와, 지구상에서 가장 단단한 금속인 비브라늄으로 만든 방패 역시, 자유, 정의를 향한 그의 신념과 의지를 보여주는 오브제다.

그의 캐릭터를 완성시킨 데에는 마블이 여러 영화를 통해 켜켜이 쌓아 올린 서사의 역할 또한 컸다. 현실에 굴하지 않고 군에 계속 자원 입대하던 약골 시절, 조직 내부의 세력에 맞서 외롭게 싸우던 모습, 자유의 가치를 믿고, 친구를 지키기 위해 아이언맨과 반목하던 장면들을 8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함께 경험하며, 대중들에게 “캡틴 아메리카는 자신이 믿는 가치들을 위해 끈기 있게 싸우고 이겨내는 캐릭터”라는 일종의, 집단적인 가정(assumption)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조직문화(Organizational Culture)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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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직문화 연구의 거장 에드가 샤인은, 조직문화란 한 집단이 외부 환경에 적응하고, 내부를 통합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집단이 학습한 공유된 집단 가정, 가치, 신념, 행동 패턴 등의 총체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한 부족의 세계관, 한 조직의 운영 체제라는 표현으로 서술되기도 한다. 하지만, “조직문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가장 쉬운 정의는 아마도 우리 조직은 “그냥(당연히) 그래”일 것이다.

예를 들어, 상사가 회의장에 들어오면 누가 말 안해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이라든지, 기념 사진을 찍자고 하면 예외없이 모두 주먹을 쥐며 ‘화이팅’을 하는 모습, 직원들이 백오피스 조직에 문의하는 것을 꺼려 하는 모습들과 같이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조직 내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구성원들이 따르는 것들이다.

에드가 샤인은 조직문화를 3단계의 위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우리 눈에 직접 보이는 인공물(1수준), 인공물을 발생시킨 조직내 암묵적인 집단 가정(3수준), 마지막으로 암묵적인 집단 가정을 문장/단어화시킨 신념/가치의 영역(2수준)이다.

회의장에 들어오면 누가 말 안 해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은 인공물이다. 여기에는 “상사는 우리보다 높은 사람이고, 높은 사람에게 예의를 표해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은 예의를 표하는 것이야”라는 조직내 암묵적인 집단 가정이 숨어 있다.

직원들이 백오피스 조직에 자유로운 문의를 하지 못하는 현상 역시 인공물의 영역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가정들이 있을 수 있다. 백오피스 조직 내부에 “괜히 잘해줘봤자 해달라는 것만 많아지고 나만 피곤해져”, “직원들이 바라는 것에 맞추기보다 윗사람의 의중이 더 중요해”라는 가정이 있을 수가 있고, 직원들 입장에서는 “어차피 백오피스 조직에 물어줘봤자 고압적이고, 잘 대답도 해 주지 않아”, “우리 조직 내부 문제를 말했다가 괜히 우리 상사에게 얘기가 전달되서 혼날 수도 있어”라는 가정들이 숨어 있을 수 있다.


조직문화에 대한 오해 ① - 자유와 정의의 상징 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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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레딧>

다시 MCU로 돌아와보자. 앞서 살펴봤듯, 마블은 캡틴 아메리카의 성장 스토리, 대사, 외형 등 일관된 경험의 지속적인 제공으로, 그에 대한 대중들의 암묵적인 집단 가정을 형성시켰다. 예를 들어 이런 것들이다. “캡틴 아메리카라면 불의에 맞서 도망치지 않을거야”, “스티브 로저스라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이겨낼거야”. 캡틴 아메리카라면 “그냥(당연히) 그럴 거야”

그렇다면 대중들이 매료되고 몰입한 것은 그의 캐릭터(가정)일까? 아니면 멋지고 튼튼한 방패(인공물)일까? 당연히 전자일 것이다. 어느날 갑자기 헐크에게 캡틴의 방패를 쥐어준다고 해서, (강해질 수는 있을지언정) 헐크가 자유와 정의, 신념을 상징하는 캐릭터가 되지 않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와 달리 현실에서는 헐크에게 캡틴의 방패를 쥐어주고서는 “여러분! 이제부터 헐크가 자유와 정의의 상징입니다”라는 광경이 흔하게 목격된다. 바로, 인공물에만 집중하는 경우다.

오늘날, “00그룹, 유연한 근무제도 도입으로 일하기 좋은 회사 만들어”라는 류의 기사들을 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유연근무제(방패, 인공물)일까, 유연한 근무 환경에 대한 조직 내 가정(캐릭터, 가정)일까. “우리 조직은 근면함이 미덕이야, 일찍일찍 출근해서 일해야지, 늦게 출근했다 괜히 찍히기만 하지”라는 가정을 갖고 있는 조직에 유연근무제를 도입한다고 해서 자율적인 근무환경이 조성될까?

물론, 제도의 도입은 이니셔티브는 될 수 있다. 하지만, 마블이 8년이라는 시간을 통해 캡틴 아메리카의 캐릭터를 완성시켰듯, 문화를 조성하고, 변화시키는 것은 많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한 작업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조직문화에 대한 오해 ② - “여러분의 점수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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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슈퍼스타K>

 에드가 샤인은 조직문화의 본질은 3수준인 암묵적 집단 가정의 영역이라고 보았다. 그 이유는 같은 현상(인공물) 일지라도, 그 원인이 되는 가정은 조직마다 천차만별이며, 해법도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회의에 너무 많은 사람이 들어오는게 문제인 조직이 있다고 해 보자.
이 현상 자체는 인공물이다. 그런데 왜 회의에 많이 들어오는지에 대한 가정을 한번 탐색해보자. 첫째, 조직의 리더가 사소한 정보라도 많은 이들이 공유해야 한다는 가치관을 갖고 있어, 굳이 들어올 필요 없는 사람들도 회의에 들어온다. 둘째, 조직내 서로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문화가 있어, 회의 참석자들이 팀원들에게 회의 내용을 공유하지 않아 부득이하게 모두가 들어오려 한다. 셋째, 조직의 리더가 회의를 소통의 장으로 인식해, 업무 얘기를 하기보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안부도 묻고, 대화를 나누기 때문이다.

첫번째 경우라면, 인원수를 줄이고, 단순 정보성 정보는 비대면으로 전달하는 것으로도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두번째 경우라면 단순 인원수를 줄인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조직 내 정보를 서로 공유하지 않는 문화에 대한 변화관리 작업이 본질이다. 세번째 경우라면, 회의의 아젠다를 명확히 하는 등, 회의의 성격을 재정의하고 별도의 소통 프로세스를 구축해야 한다.

우리는 보통 ‘회의문화 진단’이라고 하며, 회의 시간, 들어가는 인원, 회의 빈도, 그리고 이를 보충할 약간의 주관식 문항을 넣고 설문을 진행한다. 거기서 나온 단편적 점수와 서술만 가지고, 이 조직에서 어떤 가정이 작동하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을까. 혹은, 가정에 대한 깊은 탐색 없이 진단 결과만을 가지고 전사적인 개선 과제를 도출해서 일률적으로 적용 후, 각 조직의 변화 정도를 Pulse Survey를 통해 측정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이런 측면에서, 에드가 샤인 역시 진단만으로는 조직의 복잡한 가정을 모두 다룰 수 없다고 하며 진단의 유용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같은 의미로 풍토(climate)는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으나, 문화(culture)는 인터뷰, 워크숍과 같은 정성적인 방법으로만 측정가능하다고도 말한다. 섣불리 “여러분의 점수는요”를 말하기 전에, 우리 조직을 더 깊게 관찰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조직문화에 대한 오해 ③ - “아이언맨 살려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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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레딧>

하나의 가정을 해 보자. <어벤져스: 엔드 게임>의 시나리오가 사전에 유출되었다. 아이언맨이 핑거 스냅으로 타노스를 물리치지만, 평범한 신체를 가진 인간에 불과했던 그는 사망할 수 밖에 없었다는 시나리오가 유출되고, 전 세계의 아이언맨 팬들이 마블 본사에 달려가 그를 죽이지 말아달라고 시위를 한다. 시위에 견디다 못한 마블은 팬들의 소원을 수리하여 “사실은 아이언맨은 아무도 몰래 슈퍼솔저 혈청을 맞았기 때문에, 핑거 스냅을 썼지만 살아남았다”라고 시나리오를 변경하여 영화를 개봉한다. 이 영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여러분이 이 영화의 디렉터라고 해 보자. 여러분의 미션은, 아이언맨의 캐릭터를 유지시키기 위해 아이언맨을 죽이는 것인가, 대중들의 니즈를 반영해 아이언맨을 살리는 것인가?

다시 말해, 조직문화 담당자의 역할은 우리 조직의 비즈니스 환경에 맞는 문화를 조성하고, 변화시키는것인가? 구성원들의 고충을 처리해주는 것인가? 위의 가상의 케이스처럼 양자가 항상 충돌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직문화 담당자의 업무의 본질은 당연히 전자라고 할 것이다. “회사가 돈을 많이 못 주고 있는데 조직문화 담당자가 할 수 있는게 뭔가요?”, “회사가 어려운데 조직문화가 무슨 소용인가요?” 라는 질문들은 조직문화 업무의 영역을 후자로 보고 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질문들이다.

감독이나 작가가 작품의 정체성(작품성)과 대중의 니즈(상업성)와 사이에서 끝없이 고민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 조직의 문화적 정체성과, 구성원들의 니즈 사이에의 골디락스를 끝없이 탐색해 나가는 것이 조직문화 담당자의 역할이라 할 것이다.


조직문화에 대한 오해 ④ - 마케팅만 잘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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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영화 ‘플래시’ 포스터>

DC 유니버스 얘기로 잠깐 넘어가 보자. 올해 개봉했던 <플래시>라는 영화, 각종 미디어에서 광고로는 접하신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제작비가 2억 2천만 달러인데, 마케팅비를 그 절반인 1억 달러를 썼기 때문이다. 근데, 실제 영화를 보신 분은 거의 없을 것이다. 주연 캐릭터의 개연성과 서사가 부족해 흥행에 참패, 최종 5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조직문화 담당자를 작품(비즈니스)에 필요한 서사(문화)를 만드는 디렉터가 아니라, 대중들의 관심과 흥미를 불러일으키며, 좋은 분위기를 만드는 마케터로 오해하는 조직들이 있다. 주로 음악회와 같은, 각종 행사와 이벤트의 진행을 조직문화 조직의 업무라 생각하는 경우다. 이러한 마케팅 행위가 반짝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중(구성원)들은 멍청이가 아니다. 잠깐 보여주기 좋고, 언론에 홍보하기는 좋겠지만 문화 변화의 근본적 동력은 될 수 없을 것이다.


조직문화, 우리 조직만의 서사를 구축해 가는 여정

 
최근 MCU의 연이은 흥행 부진으로 기존 캐릭터들을 부활시키는 리부트가 검토되고 있다. 대중들이 마블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이들은 새롭게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기존의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와 같은 설득력을 대중들에게 가지지 못한다고 말한다. 10여년에 걸쳐 탄탄하게 구축된 서사를 가진 기존 캐릭터들과 달리, 신규 캐릭터들이 고유의 서사를 구축하지 못하고 일회성으로 소비되는 현상을 지적한다.

문화 업무 역시 마찬가지다. 다른 조직들의 멋진 인공물들을 따라하거나, 조직의 표면만을 건드리는 것보다 우선해야 하는 것은, 우리 조직내 뿌리깊게 박혀 있는 암묵적 집단 가정에 Deep Dive하고, 적확한 변화관리 방향성과 방법론을 탐색하는 일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조직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을 필요로 하거니와, 그 성과가 바로바로 나오는 일 역시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쉬운 방법론에 대한 유혹 역시 많은 길이다. 하지만, 토니를 아이언맨으로 만들어준 것이 “I'm Iron man"이라는 대사 한 줄이 아니라, 영화를 통해 보여진 그의 진정성 있는 서사였던 것처럼, 우리의 진심 어린 여정은 언젠간 결실을 맺을 것이라 믿는다. 우리 조직만의 서사를 구축해 갈, 필자를 포함한 모든 조직문화 담당자의 여정을 다시 한번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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