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인지 아티클] 채용브랜딩 첫 걸음 - 채용의 정의부터 다시 하자

제가 몸 담고 있는 현 조직은 올 한 해 빠른 성장을 거듭했습니다. 10명도 되지 않았던 인원이 5배 정도로 늘어나고, 내년엔 그보다 두 배 이상 조직규모를 성장시킬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팀원 모두가 만성적인 일손 부족에 시달려 급하게 채용을 진행해야 했지만 채용을 진행할 HR 인력은 더더욱 부족한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성장하는 스타트업에게 채용은 꼭 필요한 일이면서 리스크가 큰 일이죠. 급하다고 쉽게 할 수는 없었지만 뜻대로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규모가 작을수록, 속도가 빠를수록 채용은 더더욱 중요합니다. 좋은 타이밍에 좋은 사람을 데려와야 성장 동력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모순적이게도 우리는 그래서 채용을 '쉽게' 합니다. 잘못 뽑는 것보다 못 뽑는 게 더 큰 손실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급한' 우리 모두에게 되묻고 싶습니다. 채용을 무어라 생각하시나요? 우리는 채용의 본질에 대해 정말로 깊게 고민해 본 적이 있을까요?

채용을 잘하고 있는 조직이라면 굳이 읽어보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면, 아직 잠재지원자들이 우리 기업을 잘 모르고 있다면, 규모 있는 조직이지만 후보자 퀄리티가 조금씩 떨어져 간다고 느낀다면.

특히 채용브랜딩에 관심이 생겼다면 시간 내어 읽어봐 주세요. 제대로 채용브랜딩을 하고 싶다면 채용에 대한 내재적인 정의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글이 끝날 때 의미 있는 질문 하나를 얻어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채용이 무엇입니까?

채용이 무어라 묻는 질문에 쉽게 대답하면 '사람을 뽑는 일'입니다. 조금 더 고민하고 대답한다면 '적절한 시기(Right Timing)에 적절한 사람(Right Person)을 데려오는 일'입니다. 결국 채용은 사람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채용담당자들은 자꾸만 사람만을 보게 되는데요. 여기서 우리의 인식이 작은 함정에 빠지곤 합니다. '사람'에만 초점이 맞춰지기 때문이에요. 본질을 보려면 조금 멀리서 보아야 합니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아시나요? 본질은 그림자가 투영되는 벽 너머에 있다는 것!

상품을 잘 팔기 위해서는 '상품'에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상품 너머에 감춰진 '고객'을 보아야 하죠. 그래서 상품의 USP만 강조하기보다 고객의 Needs를 먼저 파악해야 합니다. 판매의 본질은 상품 뒤에 감춰진 '고객'인 것이죠. 마케터들의 가장 흔한 실수이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을 잘 뽑기 위해서는 되려 '사람'에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 너머에 감춰진 '상품'을 보아야 합니다.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채용담당자들이 채용을 너무 채용처럼 합니다. 우리 회사가 원하는 인재 기준을 정해놓고, 이에 부합하는 사람을 선별하려고만 합니다. 골라내려고만 하면 팔리지 않습니다. 현상을 보다 본질을 놓치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판매를 채용하듯이 하는 마케터가 잘 팔고, 채용을 물건 팔듯이 하는 채용담당자가 사람을 잘 뽑습니다. 현상에 감춰진 본질을 보고 업을 수행하기 때문입니다.


채용은 물건 파는 일입니다.

물건을 팔려면 무엇이 있어야 할까요? 상품이 있고, 판매자가 있고, 고객이 있어야 합니다. 판매자가 상품을 들고 고객을 찾아 설득해야 하죠. 가장 단순한 메커니즘입니다. 채용도 똑같습니다. 채용담당자가 상품(우리 회사)을 들고 고객(잠재지원자)을 찾아서 설득(가치 제안)을 해야 합니다.

이 기초적인 메커니즘에 기반해서 상황에 맞게 다양한 방법들을 시도해야 합니다. 물건을 팔지 못하면 빚만 지고 망하는 가게의 사장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목숨 걸고 팔아야만 다음 달을 기약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안 팔리면 다른 방법을 시도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적어도 스타트업 채용이라면 '확률을 높이기 위한 모든 활동을 하겠다'는 전제가 있어야 합니다. 채용을 물건 팔 듯해야 더 다양한 시도를 하고, 그 채용브랜딩이란 것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상품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면 채용은 매우 고관여상품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끔 채용을 보험에 비유하기도 하는데요. 사실상 보험보다도 훨씬 더 높은 수준의 고관여상품입니다. 고객 입장에서는 하루 최소 9시간을 지불해야 하고, 보험료와 비교했을 때 월 2~30배 높은 돈이 걸려있는 일이거든요.

게다가 판매자 입장으로 보면 고객도 매우 한정적입니다. 보험보다도 상품별 고객 수용범위가 좁습니다. 포지션마다 채용할 수 있는 후보자들의 기준이 매우 명확히 정해져 있으니까요.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의 입장에서 가치와 리스크가 전부 높은 상품입니다.

이렇게 팔기도 사기도 어려운 고관여상품을 '사람을 뽑는 일'이라고만 생각해서 너무 안일하게 팔고 있던 것은 아닐까요? 물건을 팔기 위해서는 고객이 우리 상품을 어떻게 느끼는지, 철저하게 고객 관점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후보자 관점에서 우리의 기업이 어떤 상품으로 비치는지 고민해 본 적이 있을까요?

물건을 판다는 관점으로 채용을 대할 때 가장 좋은 점은 각각의 요소들이 어떤 영역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채용 전반의 감춰진 구조가 더욱 잘 보인다는 점입니다. 가령, 채용공고를 잘 쓰기 위해서 '채용 관점'으로만 생각한다면 무엇을 개선해야 할지 가늠하기가 어려워요. 하지만 상품 상세페이지를 바꿔야 한다는 관점으로 본다면 더욱 명료해지죠. 채용 공고를 꼭 주요 업무, 자격 요건 우대 사항으로 쓸 필요도 없어지게 됩니다. 그저 당신이 필요한 이유 한 줄을 더 적는 것으로 마무리할 수도 있게 되죠. 관점 그 자체가 차별점이 될 수 있습니다.

채용브랜딩을 하기 위해 첫걸음을 떼려면 채용을 물건 파는 일로 보아야 합니다. 지금부터 첫 가게를 개업한 사장님 '채담씨'의 시각에서 채용을 한 단계씩 밟아가 봅시다.


1단계: 장사하기

채담씨는 절치부심해서 상품을 만들고 가게를 열었습니다. 이제 고객만 오면 됩니다! 채담씨는 무작정 고객이 오기만을 기다립니다. 1단계는 그저 기다리는 단계입니다. 채용플랫폼에 채용공고를 등록해 두고 지원을 기다리는 일입니다.

이 단계에서 물건을 잘 팔려면 고객의 눈에 띄어야 합니다. 채담씨는 간판을 잘 걸고, 가게를 깨끗이 하고, 상품 진열을 다듬습니다. 상품 설명도 한눈에 보이도록 잘 써놔야 하죠. 가게 앞을 걷던 고객의 눈길을 끌어 고객이 가게에 들어오고 싶게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채용담당자라면 채용공고와 회사소개를 잘 써놔야 하는 단계입니다. 지나가다 우연히 봐도 '오 얘넨 좀 괜찮네' 싶어야 구매(지원) 의사가 생기거든요.
그런데 기다리면서 부자가 되기에 이 장사 단계에는 채담씨가 놓친 아주 큰 맹점이 존재합니다.

타겟들의 모수를 내가 컨트롤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오로지 해당 상권을 지나다니는 잠재고객의 수에 좌지우지됩니다. 지불의사가 높은 고객, 우리가 꼭 원하는 유형의 고객을 직접 찾을 수 없고 기다려야만 합니다. 고객이 거리를 벗어나면 영영 우리를 알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채용 공고를 업로드만 해둔다면 공고의 도달 범위를 채용담당자가 컨트롤할 수 없습니다. 채용플랫폼 내에서 광고를 하는 것도 결국 전단지 알바를 돌리는 정도의 일과 같습니다. 여전히 해당 상권 안에서만 잠재고객을 확대시킬 수 있죠. 문제는 우리가 파는 '채용'이라는 상품이 값이 매우 높은 고관여상품이라는 점입니다. 상품소개(채용공고)를 보통 잘 써놓는 게 아니라면 남들과 차별점을 보여주기 어렵습니다. 보험을 팔아야 하는데 가게 문만 열어놓는 꼴입니다.

때문에 이름값도 중요합니다. 이미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가게라면 굳이 별다른 액션을 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몰립니다. 하지만 이제 막 시작하는 작은 가게라면 이런 호황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적어도 채용에서 만큼은 '로또'는 없습니다.


2단계: 영업하기

채담씨는 요새 많이 힘듭니다. 가게를 열어놨는데 손님이 너무 오지 않아요. 가끔 방문하는 고객들도 우리가 원하는 고객들이 아닙니다. 이럴 땐 고객을 직접 찾아 나서야 합니다. 채담씨는 직접 세일즈를 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채용에서는 '다이렉트 소싱'의 영역입니다.

영업을 잘하기 위해서는 많이 만나고 잘 던져야 하죠. 모수를 확보하는 일과 성사율을 높이는 일이 중요합니다. 적절한 후보자 모수를 확보하고 효과적인 제안을 던져야 합니다. 그래서 대다수 영업인들의 노하우는 만날 고객을 확보하는 일과 효과적으로 설득하는 일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원하는 고객이 명확하다면 가장 효과적인 수단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많이 들고 확장성이 떨어집니다. 영업을 반복할수록 판매는 쌓이겠지만 가게 전체의 판매 생산성이 높아지지는 않습니다. 또한 수완이 매우 좋은 판매자가 아니라면 잠재고객 모수의 대부분을 플랫폼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3단계: 마케팅 하기

채담씨는 요새 너무 힘듭니다. (원래 채용 담당자는 매일 힘듭니다) 가게도 차리고 영업을 뛰는데도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시간도 많이 부족합니다. 다르게 접근해야 할 때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는 채담씨입니다. 이제는 상권 밖의 고객에게도 우리의 가게와 상품이 알려질 수 있도록 확장하는 시도가 필요합니다. 마케팅입니다.

마케팅을 하는 건 기본적으로 도달(Reach)과 전환율(Conversion Rate)을 높이는 행위입니다. 현재의 골목 상권, 즉 지금 마주할 수 있는 잠재고객 풀을 넘어 다른 풀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상권 밖 고객들에게 우리를 알려 그들이 찾아오게 만들 수 있습니다. 채용 측면에서는 FB/IG 광고를 집행해 보거나, 우리의 타겟군이 모인 커뮤니티 등에 홍보를 하는 일 등이 포함됩니다.

마케팅은 영업과는 다르게 진행할수록 개별 고객의 전환이 늘어나는 것과 동시에 고객풀이 확장된다는 점에서 큰 시너지를 가집니다. 일종의 선순환 구조가 형성이 되는 것이죠. 파급력 측면에서 훨씬 강력합니다. (물론 우리의 채담씨가 마케팅을 제대로 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분명한 한계는 비용과 경쟁입니다. 우리와 비슷한데 우리보다 잘하는 경쟁업체가 있다면 매우 어려워집니다.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비용이 높아집니다. 다른 경쟁 우위를 찾지 않는다면 치킨게임이 될 확률이 높고 지속성을 갖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종국에는 모든 비즈니스들이 브랜딩으로 향하게 됩니다.


4단계: 브랜딩 하기

채담씨는 요새 진짜 너무 엄청 힘듭니다. (원래 채용 담당자는 매일 진짜 많이 힘듭니다) 가게도 차리고, 영업도 뛰고, 마케팅도 하며 규모도 키웠습니다.

그런데 경쟁 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났습니다. 모두가 채담씨의 가게를 따라 합니다. 이 경쟁의 굴레에 빠져들면 고객은 '효용'에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메세지를 빚고 이를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전달하며 우리만의 고유한 차별점을 만들어 내는 데에 힘을 쏟기 시작합니다. 브랜딩이 시작되는 단계입니다.

이제부터는 '연상' 싸움입니다. 누가 더 강력한 연상을 만들어 내는지, 이로 말미암아 고객들의 머릿속에서 어떤 카테고리를 선점하는지가 쟁점입니다. 효과적으로 연상을 만들어낸다면 돈도 아끼면서 물건도 잘 팔 수 있습니다.

하지만 브랜딩은 단기간에 해결되지 않습니다. 브랜딩은 늘 오랜 숙제이며 그 성과를 가늠하기도 어렵습니다. 때문에 한다고 해도 제대로 하지 못 하거나, 힘껏 힘줬다가 중간에 그만두는 것이 다반사입니다. 오래 걸리고 어렵습니다. (그래서 브랜딩이 경쟁력을 갖는 게 아닐까 자주 생각합니다)

채용브랜딩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기업들이 채용 브랜딩을 한다고 하지만 무엇이 채용브랜딩인지, 어떻게 해야 잘하는 것인지는 늘 알기 어렵습니다. 모두가 채용브랜딩을 하지만 왜 하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의 채담씨, 언제까지 힘들어야 하는 걸까요?


채용은 사람이 사람 때문에 사람을 위해 하는 일이니까

채용을 채용으로만 봤다면 우리가 왜 다이렉트 소싱을 하는지, 왜 그 채용브랜딩이란 걸 해야 하는지 쉽게 깨달을 수 없습니다. 사람 뽑겠다고만 마음먹으면 '요즘 지원자들은 왜 이 모양이야'에서 끝나기 십상입니다.

채담씨가 되어 물건을 판다고 생각해 보면 왜 고객의 눈길을 끌어야 하는지, 상권을 확장해야 하는지, 차별화를 해야 하는지가 보입니다. 고객과 상품이 설득으로 연결되는 일련의 과정을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가치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를 더 깊게 고민할 수 있습니다.

종국에는 왜 결국 브랜딩으로 향하는지. 왜 이제 와서 채용에 브랜딩이라는 단어가 붙었는지도 어렴풋이 알만 합니다. '결국 원하는 고객을 남들보다 잘 데려오기 위해 어떤 메세지를 어떻게 전달해야 할까'의 문제입니다.

채용브랜딩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본질적으로 채용이 어려워져서 시작됐습니다. 그럼에도 잘하기 위해서 시작됐습니다. 물건을 팔기 위한 채담씨의 처절한 노력의 산물입니다.

'채담씨'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느껴본 '채용담당자씨'라면 이제는 정말 장사를 넘어, 영업을 넘어, 마케팅을 넘어, 브랜딩으로 향해야 할 시기가 온 건 아닐까요?

채용을 채용으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면에 숨겨진 또 다른 의미를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채용은 사람 뽑는 일을 넘어서 사람이 하는 일, 사람이랑 하는 일, 사람 때문에 하는 일이니까요. 마지막으로 이 글을 보는 모든 채담씨들께 묻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위해 사람 너머의 상품을 고민해 보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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